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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 - 330척을 이겨낸 12척의 배

by 트렌드인사이더 2023. 1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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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명량 포스터

 

 

 

영화 <명량> 역사적 배경

 

1597년(선조 30) 9월 정유재란 때 조선 수군이 명량에서 일본 수군을 쳐부수며 해상권을 회복한 전투입니다.

이순신이 왜군 첩자의 모략으로 통제사에서 물러난 뒤 원균(元均)은 삼도 수군통제사가 되어 일본 수군과 대전했으나 다대포·칠천곡에서 대패하여 해상권을 상실하게 됩니다.

 

원균의 패전으로 백의종군 중인 이순신을 다시 삼도 수군통제사로 기용하였습니다.

이 때 이순신은 패전 후 남은 12척의 전선과 수군을 정비하여 닥쳐올 전투에 대비하였습니다.

9월 16일 왜선 330여척이 명량으로 공격해오자, 12척의 전선과 군사를 정비하여 구루시마 미치후사와 도도 다카토라가 지휘하는 왜선 31척을 격파하였습니다.

이 싸움으로 조선은 다시 해상권을 회복하였습니다.

 

 

 

영화 [명량] 개요

 

  • 감독 : 김한민
  • 개봉 : 2014. 07. 30.
  • 국가 : 대한민국
  • 주요 출연진 : 최민식, 류승룡, 조진웅, 진구, 이정현, 김명곤, 권율

 

 

 

죽고자 하면 살것이요,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

 

때는 1597년 임진왜란 6년, 명나라와 화의를 진행하던 왜군은 화의가 결렬되자 재침입을 하게 되는데 이때가 정유년이라 정유재란이라 불리게 됩니다.

장기간의 전쟁으로 조선과 왜군 모두 지쳐 있는 상태입니다.

 

왜군은 더이상 전쟁을 질질 끌어선 안된다 판단하고 조선왕을 잡기 위해 한양으로의 북상을 추진합니다.

이를 위해 뛰어난 지략과 잔혹한 성격을 지닌 용병 구루지마(류승룡)를 수장으로 내세우고 참 왜군이라 할 수 있는 와키자카(조진웅)까지 전장의 첨단에 배치하면서 총력을 기울입니다.

 

이에 조선의 임금 선조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왜군의 계략으로 누명을 쓰고 파면 당했던 이순신장군(최민식)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시킵니다.

허나 그 또한 잠시일뿐, 원균이 칠전량전투에서 대패한 이후 수군이 밀릴 것으로 판단하고 수군을 파하고 도원수 권율이 이끄는 육군에 합류하여 싸우라는 서찰을 보냅니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이 가지고 있는 생각은 달랐습니다.

바다를 버리는 것은 조선을 버리는 것이라 생각하는 그 였기에 수군을 물려 육군에 편입하는 것이 아니라 남은 12척의 배를 가지고 왜군을 수중전에서 격파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았습니다.'라는 장궤를 올리며 바다에서 싸울 것임을 알립니다.

 

한편, 왜군은 속도를 올려 북상을 하기 위해 수상 루트로 가기로 하고 거리가 짧은 진도 울돌목(명량)을 선택합니다.

진도 울돌목은 폭이 좁고 물살이 거세 항시 소용돌이가 치는 지역이라 오죽하면 물이 들어오면 울면서 돌아나가는 목이라 해서 이름도 '울돌목'이 될 정도였습니다.

 

이에 이순신 장군은 이와 같은 지형지물을 이용해 해상 전투를 펼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있고 330척의 왜군이 쳐들어 온다는 비보를 들은 조선 군인들은 잔뜩 겁에 질려 사기는 바닥 나 있었습니다.

 

이러한 병사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 이순신 장군은 '필사즉생 필생즉사 - 전장에서 죽고자 하면 살 것이요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 살고 싶다면 죽을 각오로 싸워라'는 말을 하며 사기를 진작시킵니다.

 

필사즉생 필생즉사
필생즉사 필사즉생

 

그리고 펼쳐진 해상 전투!!!

울돌목의 거친 물살 때문에 왜군의 배는 서로 부딪히며 자멸하기 시작했고 이어지는 백병전에서도 목숨을 아끼지 않는 이순신장군과 대장선의 선전에 고무되어 눈치만 보던 다른 장군들과 조선수군들이 죽기살기로 전투에 참전하면서 배 12척의 조선 수군은 330척의 왜군을 상대로 조선군 사망1 부상2 대 왜선 31척을 격파하는 대승을 거둡니다.

이 전투로 인해 수세에 몰렸던 조선수군은 다시 승기를 잡게 됩니다.

 

 

 

부록-이순신 장군 임진왜란 주요 해전 순서 및 성과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기간중 이순신장군 출전 전적

45전 40승 5무


1592년

옥포 해전 - 5월 7일 - 왜선 26척

합포 해전 - 5월 7일 - 왜선 5척

적진포 해전 - 5월 8일 - 왜선 11척

사천 해전 - 5월 29일 - 왜선 13척

당포 해전 - 6월 2일 - 왜선 21척

당항포 해전 - 6월 5일 - 왜선 26척

율포 해전 - 6월 7일 - 왜선 7척

한산도 해전 - 7월 8일 - 왜선 59척

안골포 해전 - 7월 10일 - 왜선 42척

장림포 해전 - 8월 29일 - 왜선 6척

부산포 해전 - 9월 1일 - 왜선 128척

 

1593년

웅포 해전 - 2월 6일 - 왜군 100여명 사망

 

1594년

당항포 해전 - 3월 4일 - 왜선 31척

장문포 해전 - 9월 29일 - 왜선 2척

영등포 해전 - 10월 1일 - 왜선 도주

장문포 해전 - 10월 4일 - 대치

 

1597년

4월 11일 왜군의 계략으로 이순신 장군 해임되고 백의종군

7월 6일 원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이 칠전량 해전에서 대패하여 이순신장군이 복귀함

명과 일본의 화의가 결렬되며 일본군 재침입 - 정유재란

어란포 해전 - 8월 28일 - 왜선 도주

벽파진 해전 - 9월 7일 - 왜선 도주

명량 해전 - 9월 16일 - 왜선 31척

 

1598년

절이도 해전 - 7월 19일 - 왜선 50척

장도,왜교성 - 9월 19일 - 왜선 30척 격파, 11척 나포

노량 해전 - 11월 19일 - 왜선 200척 격파, 150여척 파손, 이순신 장군 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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